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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친친 (小親親)

김애란 - 침이 고인다 본문

친친한 독서

김애란 - 침이 고인다

루나솔 2014. 3. 20. 01:20



침이 고인다

저자
김애란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07-09-28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그렇고 그런 일상에 단물처럼 고이는 이야기들달려라, 아비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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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책을 읽게 된 건 우연히 누가 올려놓은 저 문장들 때문이다.



여자가 낙향한 이유는 단지 '옷이 없다'는 거였다. 여자는 진심으로 우울해했다. 오빠와 한방에 사는 처지에 옷이나 장신구가 많을 리 없었다. 학비를 모은 뒤 남은 돈으로 멋을 부려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치마를 사고 나면 신발이 없었다. 여자의 옷차림은 스카프를 둘러맨 오리처럼 어정쩡한 구석이 있었다. 여자는 그 사실을 모르고 한동안 새로 산 치마 한 벌에도 기분이 좋아, 온종일 혼자만의 자신감에 휩싸여 캠퍼스를 날아다니곤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여자는 알게 되었다. 세련됨이란 한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오랜 소비 경험과 안목, 소품의 자연스러운 조화에서 나온다는 것을. 옷을 '잘' 입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잘' 입기 위해 감각만큼 필요한 것은 생활의 여유라는 것을.


- 김애란 '침이 고인다' 中 성탄 특선



세상에, 여자와 옷이라는 두 가지 단어를 가지고 이렇게 까지 사람이 공감가게 글을 쓸 수 있다니. 옷을 살 때면 어느 누구나 어렴풋 하는 생각이지만, 확실하게 정리되지는 못했던 그 감정들이 저 문장을 보는 순간 명확해지는 기분이었다.그래서 궁금해졌다. 김애란이라는 작가와 이 책이! 작년에 선물 받은 이 책을 아직까지 반절도 읽지 못하고 폼 처럼 가방에 넣어두기만 하다가 오늘 다시 제대로 읽어보는데 오늘은 아래 저 문장들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가끔 케이블 티브이에서 개봉된 지 얼마 안 된 따끈한 영화를 틀어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브라운관으로 들어오는 즉시 낡아버렸다. 사내는 별로 재밌지도 않은 영화를 광고까지 끼워 토막토막 잘라 내보내는 케이블 티브이의 방영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은 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는 무엇을 망가뜨리는 일이었다. 비록 안방이 극장이 아니더라도, 로미오가 독약을 들이켜는 순간 스팀 청소기가 나오고, 가위손이 사랑에 빠진 순간 몸매 교정용 거들이 나오는 것은 야비해보였다. 사내는 젓가락으로 면발을 둥글게 말아 올리며 '내가 예전에 본 걸 왜 또 보고 있지'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채널을 돌리지 않고 그 장면이 거기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 김애란 '침이 고인다' 中 성탄 특선




이제 막 알게 된 작가지만, 김애란의 글은 이게 좋다. 문장 사이에 녹아있는 생각들의 여백. 덕분에 읽고 있는 내 눈 앞에 글의 내용이 막 그리듯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근데 그 생각들의 여백 덕분에 내가 느꼈던 과거, 나를 이루는 과거 들이 그 문장들과 만나서 내 경험의 한 조각을 불러낸다. 그래서 남의 얘기지만, 더 내 얘기처럼 공감가는 힘이 있다. 더구나 저 오늘의 문장의 화자는 남잔데, 그런데도 공감이 간다. 쇼생크 탈출과 투모로우를 또 보고 있는 날 떠올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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